영화가 끝나고 나서 약한 불이 들어오면, 그 영화를 만들기 위해 수고한 수백 명의 사람의 이름이 읽기도 벅찰 정도의 속도로 하늘로 오릅니다.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화가 끝나기 무섭게 화장실이 급한 사람들처럼 자리를 박차고 상영관을 나섭니다. 여전히 스크린에는 음악과 함께 영화를 만든 수많은 수고한 이들의 이름이 오르고 있지만 어느 누구도 스크린에 눈길을 주지 않은 채 다른 세상으로 발길을 옮기고 있습니다. 영화가 주는 긴 감동을 여운으로 누릴 여유도 없는 안쓰러운 모습입니다. 더욱 한 편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 저토록 수 백 명의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수고를 했는지를 눈여겨 보려하지 않는 것이 더욱 안타깝습니다. 고집스럽게 끝까지 앉아 있는 것이 오히려 영화관사람들에게 눈총을 받는 이상한 모습이 되어 버렸습니다. 청소도구를 든 사람들이 영화관을 빠져나가는 사람들 틈을 비집고 들어와 청소를 시작합니다. 스크린에 흐르고 있는 수많은 이름들은 적어도 그들 부모들에게는 최고의 이름입니다. 그들의 자녀들이 어떤 영화를 만드는 작업에 함께 했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하며 아마 자녀의 이름을 눈여겨보려고 눈에 불을 켜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12번째 아벤트 무지켄을 지난 주일에 가졌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 마음과 같이 이 음악회는 음악을 전공하는 우리들의 자녀들에게 아비의 마음으로 사랑하고 격려하고 싶은 마음으로 시작한 음악회입니다. 물론 종교개혁자들이 왜곡된 음악에 대한 시각을 바로 잡으려고 시작한 주일 오후 작은 음악회(아벤트 무지켄)의 정신을 담아서 말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분주한 일상으로 제대로 된 음악회를 한 해에 한차례 누리기도 힘든 삶의 경주를 달려가는 교우들에게 아름다운 음악으로 고단한 저들의 삶에 쉼과 안식을 주어 삶의 인터메조를 안겨주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음악회를 거듭할수록 음악회에서 연주를 준비하고 이러저런 준비를 하는 수고한 손길들이 흡사 교우들에게 영화가 끝나고 스크린에 오르는 이름처럼 여김을 받는 것 같은 아쉬운 마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우선 몇 주 전부터 음악회 광고를 하고 알려주었음에도 그것도 평일 따로 날을 잡아 하는 음악회도 아니고 주일 오후 찬양예배 시간에 갖는 음악을 통한 예배인데도 듬성듬성 빈자리가 아쉽기만 합니다. 그리고 음악회 중간 잠시 쉬는 시간에 정말 아주 쉬어버리는 모습도 보면서 내년에도 13번째 아벤트 무지켄을 한다면 중간에 쉬는 시간을 갖지 말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두 달 전부터 아벤트 무지켄 연주를 위해서 준비한 여린 가슴들이 교우들의 이런 모습에 마음이 상하지 않았는지 공연한 걱정이 들기도 합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랑은 굉장하고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영화를 정말 사랑하고 제대로 영화를 볼 줄 아는 사람들은 스크린에 흐르는 이름 앞에 적어도 자리를 지켜 그들의 이름을 읽어주는 겁니다. 그들의 수고에 직접 만나 찬사를 보낼 수는 없지만 스크린에 흐르는 그들의 이름 앞에 묵묵히 자리를 지켜주는 겁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랑은 서로의 수고와 애씀에 자리를 지켜 그들의 수고를 바라봐 주는 겁니다. 그래서 어느 연주보다 부담스러웠을(자신들을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성도들 앞에서 연주한다는 건 그들에게 부담이었을겁니다.) 그 자리에 앉아 그들을 아비의 마음으로 따뜻한 눈길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많은 위로와 용기를 얻을 겁니다. 내년에도 13번째 아벤트 무지켄을 갖게 된다면 자리 없어 보조의자가 필요한 최고의 하우스 음악회가 되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연주자와 그렇게 가까이 앉아 음악을 듣고 보는 기회는 우리의 삶에 흔히 주어지는 기회가 아님을 알고 소중히 여기는 따뜻한 마음들이 내년에는 더욱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연주를 준비하고 연주해준 그들이 고맙고 고마운 마음만큼 아쉬움이 있어 작은 투정을 해 봅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