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하시면서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라고 아담에게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가장 먼저 시키신 일은 동물들의 이름을 짓는 일이었습니다. 그것도 땅을 발을 딛고 사는 짐승뿐만 아니라 공중의 모든 새의 이름도 짓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아담이 어느 정도의 시간을 갖고 어느 정도의 동물과 새의 이름을 지어 불렀는지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성경은 단지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고 만 되어 있을 뿐입니다. 개혁신학적인 입장에서 건강한 신학적 입장을 견지하지 않는 것으로 보고 있는 워치만 리의 작품 가운데 혼의 잠재력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서 저자는 죄를 짓기 전 아담의 능력은 현재 인간의 능력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났을 것으로 짐작합니다. 충분히 일리 있는 이야기로 보입니다. 얼마의 시간이 걸렸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 수많은 동물들의 이름을 지어 불렀다는 것은 보통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존재하는 생물들을 번호로 부르시지 않으셨습니다. 아담에게 각 동물의 특성을 담아낸 이름을 지어 부를 수 있도록 위임을 하셨습니다. 그만큼 아담의 능력이 현재 타락한 인간과는 분명 차이가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가끔 사람의 이름을 바꿔 주신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렇고 사라도 그렇고 가장 현저한 이름은 야곱을 이스라엘이라 불러주신 것입니다. 그 만큼, 이름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우리의 삶의 중요한 부분을 담아내고 있는 겁니다. 여러 해 전, ‘마스터 라이프라는 제자 훈련 과정을 시작하는 시간에 자기 이름을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덧붙여 자기 이름의 뜻을 더불어 소개하는 시간입니다. 평소 자신의 이름을 깊이 생각해 보지 않은 형제자매가 대부분이었지만, 이 시간을 통해서 자신의 이름에 담긴 뜻을 어떻게든 찾아 보려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저의 이름은 건널 자와 공 자가 쓰였습니다. ‘자는 집안 돌림자였고 자는 아버지께서 붙여주신 것입니다. 은혜롭게 재해석을 해서 모든 공을 주님께 건네 드리는 사람이라는 그럴듯하고 은혜로운 해석을 해보았습니다. 작명가들의 작업은 결코 동의하지 않지만 이름을 신중하게 짓겠다는 생각까지 탓할 생각은 없습니다. 샤머니즘적이거나 운명론적인 생각이 가미되어 있기에 탐탁하지 않을 뿐입니다. 가끔 출산을 앞둔 부모들로부터 태어날 아이의 이름을 부탁받고는 합니다. 아이가 평생 그 이름으로 살아갈 것을 생각하면 결코 가벼운 일이 아닙니다. 며칠을 기도하고 히브리어 인명사전, 옥편, 영어사전을 뒤적거리고 성경을 찾아보면서 할 수 있는 대로 주 앞에 아름답고 은혜로운 이름을 지어주려고 애를 씁니다.

아들이 조그마한 가게를 얻어 평소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어 하는데 이름을 짓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결국 아들에게 지어준 아들의 영어 이름을 제안을 하고 말았습니다. 이제 아들의 선택만 남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향하여 내가 이름으로도 안다.’고 하신 말씀의 무게감이 가슴에 크게 다가옵니다. 우리의 이름을 아신다고 생각하니 우리의 이름이 갑자기 소중하기 그지없습니다. 성도들의 이름이 주마등처럼 순식간에 지나갑니다. 저에게 평생 동역자들로 함께 해온 생명같이 소중한 이름들입니다. 십자가에 죽으시면서 살려내신 이름들이니 주님은 그 이름들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실까를 생각하니 마음에 평안의 꽃이 피어납니다. 그 이름을 부르며 주 앞에 있을 때 그래서 평안을 누립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