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개월 전 약속된 의사진료시간이 밀려드는 환자들로 1시간이나 지연이 됩니다. 웬 환자들이 그리 많은지 세상에 있는 모든 사람이 환자 같다는 착각을 갖게 합니다. 의사의 진료를 기다리는 환자들로 외래 의사 진료실 앞이 흡사 지하철 출퇴근 시간 때의 모습니다. 그 사이를 뚫고 힘겹게 휠체어 앉아 이동하는 이가 있고, 아예 침대에 누워 핏기 없는 얼굴과 초점을 잃은 동공으로 어렵게 지나가는 모습이 안쓰럽기 그지없습니다. 엘리베이터 앞에 서서 기다리는 어느 엄마와 클러치에 기대어 힘겹게 서 있는 10살 쯤 되어 보이는 아들의 대화가 아픕니다. 엄마가 아들에게 묻습니다. “힘들어. 휠체어 탈까?” “아니 그냥 걸어갈래.”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클러치를 짚은 소년이 들어서는데 한참을 걸립니다. 한 걸음 무슨 연유지 모르지만 한걸음 옮기는 것을 힘들어합니다. 그 모습을 바라보는, 먼저 엘리베이터 안에 들어서서 버튼을 누르고 있는 어머니의 표정이 숙연합니다. 병원 본관에서 별관으로 가는 중간에 어린이들을 집중 치료하는 병동이 있는데 웬만하면 그 곳을 통과하지 않으려 돌아갑니다. 학교 마당에서 뛰어 놀며 머리가 촉촉히 젖어 있어야 할 아이들이 핏기 없는 모습으로 이곳저곳에 흡사 파편처럼 앉아 있기 때문입니다. 탁발승의 모습으로 말입니다. 그 아이들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제 삼자의 마음이 이렇게 불편한데 그 아이들의 부모의 마음이 어떨까를 생각하니 그 병동을 거쳐 갈 용기가 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욥의 세 친구들이 욥에게 찾아 와, 욥의 고난의 이유를 자꾸만 하나님과 연관을 지어 회개를 촉구하는 모습이 생각납니다. 욥의 친구들이 소아암 병동에 찾아온다면 그 아이들에게 어떻게 말할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적어도 욥을 대하듯 이는 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주 앞에 서는 날까지 풀 수 없는 문제 같습니다. 이와 같지는 않겠지만 우리의 삶에서도 당장 이해 할 수 없는 난해한 문제들이 여전합니다. 곧 우리의 삶은 하나님만이 해답을 갖고 있는 복잡한 문제 같습니다. 찬송가342어려운 일 당할 때가사가 등대의 불빛처럼 마음 한 편에서 피어납니다. ‘어려운 일 당할 때 나의 믿음 적으나 의지하는 내 주를 더욱 의지 합니다. 세월 지나 갈수록 의지 할 것 뿐 일세. 아무 일을 만나도 예수 의지 합니다. 밝을 때에 노래며 어둘 때에 기도와 위태 할 때 도움을 주께 간구합니다. 세월 지나 갈수록 의지 할 것 뿐 일세. 아무 일을 만나도 예수 의지 합니다.’ 수능 국어 31번 문제 앞에 간절함으로 지혜를 구했을 주의 자녀들처럼 인생이라는 가장 어려운 문제 앞에 우리는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합니다. 아침저녁으로 아픈 성도들의 이름이 온 가슴에 가득합니다. 주의 긍휼을 구합니다. 주여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