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변에 위치한 아파트에 살고 있어, 하루에도 몇 차례씩 급한 경적소리를 내며 오가는 앰뷸런스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경적소리를 내면서 달려가고 있다는 것은, 그 안에 화급을 다투는 생명이 경각에 달린 아픈 사람이 타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앰뷸런스에 탄 모든 사람이 중증환자는 아니겠지만 거의 대부분은 촌각을 다투는 급한 환자들일 겁니다. 앰뷸런스 소리를 들으면서 천개의 병상 이상 되는 상급 병원으로부터 시작해서 전국에 가득한 수많은 병원 침상에 누워있을 아픈 이들이 생각납니다. 웬만하면 명절이라는 추석 전에 병원을 나와 사랑하는 가족들과 추석을 같이 보내고 싶었을 터인데, 그럴 수 없을 정도로 상태가 위중하여 퇴원하지 못했을 겁니다. 순간 지난 6월 말 수술을 받던 날 생각이 납니다. 드라마에서나 보던 그 장면의 주인공이 되어 구르는 침대에 누워 천정 불을 주마등처럼 바라보며 수술실 안으로 들어서던 기분 나쁜 기억입니다. 이른 아침 수술실은 수술을 대기하는 환자들과 분주하게 오가는 의사 간호사들로 장사진입니다. 이름을 몇 번을 확인을 하고 마취합니다.’는 말과 함께 얼마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르지만 통증이 배에 가득합니다. 수술을 마친 환자들이 마취에서 깨어나면서 자신도 모르게 내는 신음소리들은 흡사 전쟁터 같습니다. 이를 악물고 참으려 했지만 신음소리가 저절로 나옵니다. 이런 과정을 겪어가면서 병과 싸우는 아픈 사람들이 병원마다 전국에 얼마나 많을까를 생각하니 현기증이 납니다. 왜 이리 아픈 사람들이 많을까를 생각하면 세상이 참 부조리하다는 생각이 들면서도 결국 인간이 하나님을 떠난 죄의 아픈 열매를 거두고 있다는 생각에 할 말은 없습니다. 결국 인간이 자초한 것을 거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건강의 가치는 이 세상에 비교할 것이 없어 보입니다. 건강을 잃으면 사실 인생을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같은 아파트 같은 동()에 육군 중장출신과 대사 출신이 살고 있습니다. 두 분 다 건강을 잃어버리기 전에는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았을 겁니다. 그런데 중장출신은 뇌졸중 후유증으로 걸음걸이가 갓 돌을 지난 아이 걸음걸이 수준입니다. 그리고 대사를 지낸 분도 어딘가 아픈지 지팡이에 의지하여 겨우 발걸음을 옮기는데 그 모습이 초라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분들의 발걸음이 우리 교회 도윤(이동욱 집사 아들-3)이 보다 훨씬 느립니다. 성경이 모든 인생은 흙에서 와서 흙으로 간다고 말씀한 것이 진리 맞습니다. 아이로 태어나 한 평생 살다가 결국 지팡이에 의지하여 겨우 걷기가 가능한 힘든 때를 맞는 겁니다. 살아 있음이 기회입니다. 걷고 뛸 수 있을 때가 복입니다. 주머니의 무겁고 가벼움은 건강의 복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것들입니다. 문제는 건강이 우리 마음대로 되지 않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인생이 한 없이 부조리해 보이지만 성경은 우리의 건강까지도 우리의 삶의 주인이신 주님의 뜻에 있다고 증거합니다. 겸손입니다. 주 앞에 겸손함이 우리의 생명입니다. 교만한 자의 집을 허무신다는 주의 말씀은 공연한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의 몸이 우리가 평생 사는 집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지나가는 앰뷸런스 소리를 들으며 주 앞에 고개를 숙입니다. 샬롬!